My Life/Information2008. 8. 17. 18:41
< 적대적, 반항적 행동을 보이는 아이 * >

                                                               글쓴이 : 권영민(서울발달·심리상담센터 부소장)

아이가 부모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고 제 뜻대로 하거나, 집에서 뿐만 아니라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 말대꾸하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해서 종종 부모가 난감해지는 경우가 생긴다. 아이가 부모 말에 고분고분하기를 기대하기가 어렵고 자꾸 성내는 일이 늘어나기 시작해서, 아이와 부모가 하루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씨름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무엇 하나 내 뜻대로 해주지 않아서 화나 있는 아이의 마음과 매사에 나이 어린 자녀와 다투어야 하는 부모의 마음 둘 다를 적절하게 조율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렇게 반항을 하는 내 아이의 행동이 정상인지 아닌지를 부모는 알아보고 싶다. 미국정신의학협회(1994)는 [정신장애의 진단통계 편람]에서 “반항성 장애”의 준거를 제공하고 있다<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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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표 : 미국정신의학협회(1994), [정신장애의 진단통계 편람] 중 “반항성 장애” >

첫째, 다음에 제시되어 있는 행동목록 중에서 적어도 6개월 동안 4가지 혹은  4가지 이상의 행동이 아이에게 지속되어 나타났다면, 거부적, 적대적, 저항 행동의 한 패턴으로 범주화된다 :

(1) 자주 화를 낸다
(2) 자주 어른에게 대든다.
(3) 자주 어른의 요구나 규칙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거나 거부한다.
(4) 자주 고의적으로 사람을 괴롭힌다.
(5) 자신의 실수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자주 다른 사람 탓을 한다.
(6) 다른 사람에 의해서 자주 과민해지고 쉽게 화가 난다.
(7) 자주 화를 내고 성을 낸다.
(8) 자주 원한을 품거나 앙심을 갖는다.
주의점 : 그 행동이 비슷한 나이와 발달 단계의 사람들에서 전형적으로 관찰되는 것보다 더 자주 일어날 때만 준거가 충족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둘째, 위와 같은 행동에서의 장애는 사회적, 학업적, 직업적 기능에서 중요한 손상을 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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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사례를 통해서 적대적-반항성 행동을 보이는 아동에 대한 이해를 높여보고자 한다.

[ 영희(가명)는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이다. 1학년말, 영희는 학교에서 수업 도중 몰래 교실을 빠져나가 화장실에 갔었던 적이 있었다. 평소에도 영희의 충동적이고 산만한 행동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신 학교 담임선생님은 이를 계기로 영희에 관하여 전문기관의 상담을 받도록 어머니에게 권고하였다. 마침 이 무렵, 영희 어머니도 영희로 인해서 애를 태우던 중이라서 전문상담기관을 방문하려던 참이었다. ]

영희가 집에서 엄마를 힘들게 했던 것들은, 식사 때가 되어 밥을 차려주면 배가 고프면서도 밥을 안 먹는다든지, 배가 고프다 해서 밥을 차려주면 엉뚱하게 딴 짓을 하고는 엄마가 먹여주어야 먹는다든지 하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원하는 것이 있을 때에도 심통난 것처럼 말하고, 원하는 것이 달성되지 않으면 무조건 떼를 쓰거나 입을 다물어 버리는 행동이었다. 그 밖에, 모방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리지 않고 무작정 오빠를 따라하는 행동들이 있었다. 영희의 이렇게 상황에 맞지 않는 엉뚱한 행동은 마치 청개구리처럼 보였다.
영희의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종합 심리 평가를 실시하였다. 검사 상황에서 조차도, 영희는 검사자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고집스럽게 행동하였다. 대답에 자신이 없어지면 무조건 “나 여기까지만 할 꺼야. 절대로.”라고 혼자말처럼 중얼거리고는 이내 입을 다물어 버리곤 했다. 또한 주변 상황에 매우 민감하였고, 그러한 자신의 태도에 대한 검사자의 반응을 민감히 살폈다.
검사하는 동안 관찰된 이러한 행동들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공격적인 행동을 하고 욕구달성을 위해 막무가내로 떼쓴다는 어머니의 보고와도 일치하였다. 아마도 이런 행동은 학업 수행에서도 자신의 지적 잠재력을 충분히 발현시키는데 어려움을 가질 것 같았다.

검사 결과에 따르면, 기질적인 산만함은 없었으나, 심리적인 불안정으로 인한 산만한 태도들이 나타났고 고집스러운 양상도 보였다. 사소한 것에 너무 치중하여 전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또한 외부의 압력에 예민하고 연령에 맞지 않게 유아적인 표현이 많았고 권위에 반항하기 위해서 비딱하거나 과시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영희의 지적 능력은 “평균상” 정도로 동등한 수준의 학업 성취가 예상되었으나, 지시나 규칙 따르기와 같은 인내심과 끈기 부족은 실제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데 어려움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무엇보다도, 정서적인 문제의 영향으로 실생활에 대한 현실 검증력과 대처력이 낮은 편이었다. 즉 사회적 상황을 올바로 판단하여 적절하게 행동하는 능력이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능력의 부족은, 수업 중에 몰래 나가는 행동이나,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거나 해결하려고 할 때 오빠가 하는 행동 양식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과 상관이 있는 것 같았다.

영희가 이렇게 반항적이고 일탈된 행동을 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영희는 주변 상황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매우 불안해했다. 원하는 것을 얻 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불안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때로는 안간힘을 써보기 이전에, 일찌감치 단념해 버리는 경향도 있었다. 이렇게 자기 나름대로 안간힘을 쓰는 행동과, 미리미리 단념해 버리는 극단적인 행동 때문에 영희는 자신조차도 무엇을 원하는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에 대해서 모호할 때가 많았다. 물론 식구들도 영희를 이해하기가 난감했다.

특히나 적대적, 반항성 장애의 일탈 행동은 다른 사람의 기본 권리나 중요한 사회적 규범을 침해하기 보다는 부모와 가족환경에 더 많이 한정되는 편이다. 어머니의 보고, 관찰된 행동, 심리검사 결과 등을 종합해 보았을 때, 영희가 보이는 반항적 행동과 부적응 현상 역시 가족관계에서 비롯된 듯했다.

영희는 모든 가족의 사랑을 오빠 혼자 독차지한다고 느꼈다. 자기는 언제나 가족의 관심 뒤로 밀려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피해를 입는다고 느꼈다. 그래서 영희는 자기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에게 미움도 느끼는 동시에, 사랑도 받고 싶은 두 가지 마음으로 오랫동안 갈등하고 있었다. 영희는 이런 갈등의 표현을 가족들을 교묘하게 속썩이거나 반항적인 행동으로 나타냈다. 그런데, 바람직한 행동에 칭찬하기 보다는 부적절한 행동을 일으켰을 때 많은 주의와 걱정을 기울이는 가족의 태도는, 영희로 하여금 상대방의 관심을 얻기 위해 점점 더 상황에 부적절한 행동을 하도록 이끌었다. 심지어 영희는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가족에 대한 무의식적인 적대감을 일반 생활에까지 연결하고 있었다. 집안 밖의 구별 없이, 영희는 자기 뜻대로 안되면 몹시 불안하고 위축되었지만 그것을 감추기 위해 반대로 수동-공격적인 행동을 하였다. 이러한 경험의 악순환은 마침내 어머니가 영희를 다루기 힘든 상태까지 이르게 하였다.

따라서, 이런 경우에 영희 자신의 정서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놀이 치료와, 적절한 행동을 학습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행동 수정, 영희의 행동을 이해하도록 돕고 바람직한 부모의 행동에 대한 인식과 실행을 위한 부모상담이 권고될 수 있다.

영희의 경우는, 비교적 오랜 기간의 심리치료를 통해서 자신의 행동 문제 및 정서적 갈등을 해결하고 자신감 있게 홀로설 수 있었다. 영희는 타인과 타협할 수 있는 방법도 깨닫게 되고, 자신의 욕구와 감정들을 알맞게 표현하는 건강한 모습도 찾아 나갔다.

영희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같이 어려움을 극복하여야 하는 사람은 바로 영희의 어머니였다. 영희의 행동 특성이 어떠한 까닭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상담자와의 상담을 통해서 알게는 되었지만, 그것을 단지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영희와의 갈등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계속 엄마를 괴롭히고, 삐딱하게 행동하는 영희를 어머니로서는 선뜻 예뻐할 수 없었다. 어머니 자신역시 영희를 객관적으로 떼어놓고 생각해보는 여유가 필요했다. 어머니는 영희로 인한 괴로운 심정이나 자신의 마음 상태를 털어놓으면서 감정을 정화시키고 영희로 비롯되는 화를 풀어나갈 수 있었다. 이런 과정 중에서 영희가 엄마의 애정을 한층 더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영희가 상담을 받으러 다니는 그 시간동안 엄마와 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항상 오빠에게 무언가를 빼앗기고 있다는 생각이 많았던 영희에게 엄마와 함께 단둘이 어딘가를 다녔던 경험은 소중했다. 영희는 엄마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어머니의 이런 협력 자세가 영희의 문제 행동을 개선해나가는 데 중요한 요인이였다.

또한 어머니는 일관성 없이 아이들에게 물질적인 애정을 표시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향한 불만이 많았다. 처음엔 그러한 조부모님들의 태도가 달라지기를 막연하게 기대했었지만, 조부모님의 태도를 바꾸는 것보다는 ‘어머니 스스로’가 아이들의 더 강력한 양육자로 자신있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더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역시 아이들을 잘 기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였고 점점 자신의 역할을 가정안에서 확보할 수 있었다.

영희가 실제생활에서 좀 더 바람직하고 자신감 있게 적응하기 위해서 언제나 가장 중요한 사항은 바로 가족들의 일관성있고 안정감 있는 존중과 따뜻한 배려가 아닌가 싶다.

* 이 글은 2007년 8월 인구보건복지협회 <아가사랑> 홈페이지의 내아이 건강관리 [놀이와 교육] 컬럼에 게재되었던 원고입니다. 이 글을 인용하실 경우에는 무단 복사하거나 게재하지 마시고 글의 출처 및 저자를 함께 게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hwanj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