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사기꾼에 대한 단상
저는 아직 사기를 당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가 똑똑하거나 현명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운좋게 아직 사기꾼을 만나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 하면, 사기당한 분의 사정을 자세히 보면,
나라도 당하지 않을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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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995년 즈음 일겁니다.
아는 선배 한분이 사기를 당하셨습니다.
나름 현명하고 사리에 밝고 일처리가 꼼꼼한 분이라 생각했던지라 내심 실망했었습니다.
겉보기와는 달리 내실 없고 사람 보는 눈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수년을 같은 기숙사에서 지낸 룸에이트 선배에게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사기꾼은 학교 근처에서 20년도 넘게 살았고, 그 선배와도 7년 넘게 알고 지낸 친형과 같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타지에서 어린 나이에 이곳에 와서 공부밖에 모르는 우리같은 학생에게
아르바이트 자리부터 찬거리에 용돈까지, 수년간 그렇게 잘 해 주었다고 합니다.
TV 연속극이나 영화에 나오는 사기꾼과는 달리, 그렇게 사람이 순하고, 말도 조용조용하며,
얼굴도 그렇게 선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온갖 굳은 마을 대소사를 도맡아 하며, 동네에서도 칭찬이 자자했다는 군요.
돈도 자신이 빌려 달라고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라, 수개월 전부터 매우 힘든 내색을 비치는 것으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돈도 받지 않겠다는 것을 선배가 자발적으로 억지로 쥐어 준 것이고,
그때 고마워하며 흘리는 눈물이 그 순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정말 진심으로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준 돈이 10만원 100만원 1천만원이 되고, 시간도 1달 반년 1년이 넘어가던 어느날,
갑자기 들려온 소문은, 그렇게 돈을 빌려준 사람이 동네 사람 대부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정말 힘들게 사는 할머니 부터 생활보조금을 받아 학교다니는 소녀가장 돈까지...
그것도 알고 보니 전과도 상당하고...
(중략)
결국 진실은 밝혀 지고 그 사기꾼은 감옥소에서 죗값을 치루는데,
그 사기 당한 선배가 한번은 면회를 갔더랍니다.
"... 정말 나에게는 미안하게 되었다고. 나가게 되면 내 돈만은 꼭 갚겠다고 하더라."
그 선배는 그 사기꾼을 아직도 마음 깊이 믿고 있었습니다.
사기 당한 사람이 스스로 사기당했는지도 모르게 하는 것,
저는 사기꾼의 진정한 경지(境地)를 그 때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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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dvdprime 라는 커뮤니티를 보면 여러 사기꾼이 나옵니다.
닉네임이 "B급X년" 이라던가 "CAN" 이라던가, (개인프라이버시 상 조금 변조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일단, 작업 준비 기간이 엄청 깁니다.
최소 3년 이상은 기본 입니다.
그리고, 작업 준비 기간 동안은 정말 진심으로 열심히 활동합니다.
그렇게 올바르고 신사적이고 합리적일 수가 없습니다.
저도 dvdprime에서 눈팅기간이 꽤 되는지라 저 사람들의 그간 활동과 쓴 글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렇게 좋게 보일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괜한 분란을 일으켜 문제의 본질을 희석시킵니다.
당장 저 'B급X년'이란 사람도 커뮤니티 내부의 미묘한 분란의 불씨를 큰 불길로 살리면서
큰 분란을 일으켰습니다. (자신의 채무 문제가 터지기 직전에)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커뮤니티에서 발을 빼기 시작하며 시간을 벌었다고 합니다.
일련의 사태를 보면, 저도 저 사람들과 친분이 있었다면, 저도 분명 사기 당했을 겁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사기꾼이라 명함을 내밀 수 있다는 겁니다.
역으로 말하면, 일반 사람은 사기꾼을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을 사귀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할 것인가...
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결국 기본에 충실할 수 밖에 없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친분과 상관없이, 원칙 그대로 하는 것이 기본이라 생각합니다.
돈이 오가는 거래는 소액으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하며,
인간 관계에서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것은 금물이며,
짧은 기간의 관계로 속단해서는 안됩니다.
다소 섭섭하고 삭막한 이야기 입니다만, 어쩔수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귀어 마음 깊이 막역한 사이가 되는 것이 그리 쉽겠습니까?
차근 차근, 오랜 기간, 숙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더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고,
삼천포로 빠지기 전에 여기서 이만.
Posted by hwanj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