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과 이원복이 읽었으면 하는 책
- Posted at 2008/03/03 12:55
- Filed under 한국이야기
과거의 어두운 면만 보지 말고, 밝은 면을 이어받아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뒤만 돌아보고 있기에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언제까지나 과거에 발목 잡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미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습니다. 이념의 시대는 갔습니다. 투쟁과 비타협이 미덕이던 시대도 끝이 났습니다. 이제 정치, 경제, 외교안보, 노사관계 모든 분야에서 실용의 잣대가 적용돼야 합니다. 형식과 비효율, 비생산을 혁파해야 합니다. 새로운 사고와 통찰력으로 국가전략을 세우고 이를 실천해 가야 할 때입니다. 한국과 일본도 서로 실용의 자세로 미래지향적 관계를 형성해나가야 합니다. 역사의 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과거에 얽매여 미래의 관계까지 포기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기념사 전문은 여기에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 ··· 3D910100
수많은 분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궐기하다 숨진 삼일절에 굳이 이런 얘기를 하는 걸 보니, 며칠 전 본 이원복의 세계사 산책 '역사의 상처' 편이 생각났다.
이 두 분께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 지난 주 발간된 따끈따끈한 신간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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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발간되는 주간한국 서평을 지난주에 썼는데, 아직 인터넷에 올라오지 않았지만 책은 발간됐으니 부족하지만 내가 쓴 서평을 올려보겠다.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
이용우 지음 / 역사비평사 발행 / 1만3,000원
며칠 전 ‘역사의 상처’라는 제목의 만화 한 토막을 한 중앙일간지에서 보았다.
이 만화는 “세계 각국은 역사의 상처를 갖고 있으며 외국인이 그들에게 그런 상처를 건드리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라면서, “우리에겐 일제 치하 36년간의 식민 지배 경험이 가장 큰 역사의 상처로 남아 있고, 이 상처는 아직도 제대로 아물지 않았다. 정말 지겹게도 아픈 데를 후벼 파는 이들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또 “이들은 과거사 캐기, 친일 분자 색출 응징, 대한민국 정체성 흔들기를 한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이제 과거는 덮어두고 미래 지향적으로 살자며 마무리했다.
한마디로 ‘역사 의식을 갖지 말자’고 주장하는 이 만화를 그린 사람이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세계 역사 만화를 그려 명성과 부를 거머쥔 작가와 동일인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과거사 청산이 ‘대한민국 정체성 흔들기’라고 말했지만, 일제 부역자에 대한 처벌은 고사하고 진상 규명조차 제대로 안 된 나라에서 과거를 그냥 덮어버리자는 얘기가 오히려 대한민국 정체성을 흔드는 짓이라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 있다.
이렇게 일제시대라는 한국 역사의 한 부분을 영원히 땅 속에 파묻어 버리자는 사고방식을 가진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한 권 나왔다. 항상 우리가 과거사 청산에 대해 말할 때 ‘모범 사례’처럼 거론하는 프랑스에서의 과거사 청산에 대해 쓴 연구서다.
2차대전 직후~1950년대 초까지 드골의 임시정부는 프랑스의 대독협력자 숙청을 진행했다. 책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약 35만명(당시 프랑스인 116명 중 1명 꼴)에 대해 서류 검토가 있었고 이 가운데 12만명이 재판을 받아 9만8,000명이 실형을 선고 받고 3만8,000명이 수감됐다. 1,500명은 정식 재판 후 사형됐지만 8,000~9,000명은 재판 없이 처형됐으며 2만명의 여성 부역자들은 삭발을 당했다.
간단한 숫자만 몇 개 나열해 봐도 당시 프랑스의 숙청이 얼마나 단호하고 철저했는지를 알 수 있다. “프랑스에서 철저한 과거청산이 있었다는 것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던 안병직 교수나 전후 프랑스에서 나치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부역자들을 단죄하는 일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 복거일 씨는 저자가 프랑스 고서점에서 1차 사료까지 꼼꼼히 찾아가며 쓴 이 책을 한번 읽어봐야 할 것 같다.
프랑스 과거사 청산을 한국의 모범으로 삼는 데 대해 반대하는 이들의 또다른 논리는 프랑스와 한국의 상황은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겨우’ 4년 동안 독일의 지배를 받았지만 한국은 36년이나 일제 식민지였다는 것. 하지만 프랑스라고 해서 독일 협력자들을 무 자르듯 쉽게 가려내 처벌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한국은 주권을 완전히 빼앗긴 식민지였던 반면, 프랑스는 수많은 식민지들을 독일에 빼앗기지 않은 채 고스란히 갖고 있었고, 단순한 ‘괴뢰정부’라고 치부할 수 없는 ‘비시 정부’가 있었다. 따라서 이 정부에서 일한 사람들은 자기 행동을 부당하다고 여기지 않았지만, 공무원 등 ‘단순’ 복무자도 모두 단죄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거의 절반은 40년대 말~50년대 초의 숙청 기간에 벌어졌던 일들을 사실적으로 고찰하고, 두 번째 부분은 반세기 만인 90년대에 새롭게 밝혀진 과거 독일 협력자들에 대한 ‘반인륜범죄’ 재판을 다룬다. 마지막 부분은 이 과거 청산 과정이 실제 프랑스인들에게 얼마나 큰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로 남았는지를 고찰한다.
세 번째 부분이 흥미로운데, 현대 프랑스인은 해방 직후의 숙청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린다고 한다. 살인자에게도 사형을 선고하지 않는 현재와 달리 과거사 청산 때 친척이나 지인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됐다는 사실은 아마도 기억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프랑스의 드골 정부가 이 과거사 청산을 통해 정통성을 부여 받았고, 결과적으로 프랑스라는 국가가 권위주의적, 인종주의적 체제에서 공화주의적, 민주적 체제로 전환하는 계기로 삼았다고 말한다. 한 국가가 ‘미래 지향적으로’ 나아가려면 과거를 땅에 묻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낱낱이 밝힌 후에 가능하다는 것을 프랑스의 역사는 가르쳐 주고 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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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첨언하면, 본 내용은 다 잊어 버려도